2018. 11. 7. 05:56ㆍ사회 · [ 이슈 ]
【이슈】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 과 ‘허왕후’···'친선'인가 '촌극'인가
4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인도를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한국 시간으로 6일 오후 6시30분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 아요디아에서 열리는 허왕후 기념공원 착공식에 참석했다.
김정숙 여사의 이번 인도 방문은, 지난 7월 문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모디 총리가 허왕후 기념공원 착공식과 힌두교의 전통 축제를 함께 개최해 양국 교류 역사를 축하하자며 고위급 대표단 파견을 요청해 성사된 것으로 이번 방문에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도 수행단에 포함됐다.
두 나라가 친선을 도모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실존 여부가 불분명한 신화 속 인물의 기념공원 착공식에 국가를 대표한 외교사절단을 보낸다는 게 과연 적절한 일일까?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인도학부)의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2017, 푸른역사)를 중심으로 이모저로 살펴봤습니다.
◈ 허왕후, 인도에서 왔나?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왕후는 기원 후 48년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야로 와서 김수로 왕의 부인이 된 인물<삼국유사>에는 또 허왕후가 가야로 올 때 파사석탑을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외국인으로 한반도 왕조의 왕비가 된 인물이라면 단연 원나라 사람으로 고려 공민왕의 비가 된 노국공주가 대표적이다. 노국공주는 실존 인물이지만 허왕후가 실존 인물이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입증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신화 속 가상 주인공인 허왕후가 <삼국유사>를 시작으로 고려와 조선을 거쳐 최근까지도 왜곡된 기록들이 덧붙여지고 부풀려지면서, 무덤과 기념공원까지 갖춘 실존 인물로 변질됐다는 게 이광수 교수의 주장이다.
<삼국유사>에 허왕후의 고향이라고 나오는 ‘아유타’는 ‘아요디아’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지금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다. 이번 김정숙 여사가 방문한 바로 그 도시로 <삼국유사>의 아유타가 바로 지금의 아요디아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이광수 교수에 따르면 아요디야라는 도시는 기원 후 5세기 이전에는 존재한 적이 없고 허왕후가 한반도로 왔다는 시기와는 최소 400년 이상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아요디아는 힌두교의 신화적 서사시인 <라마야나>에만 등장하는 도시 이름 그러다가 기원 후 5~6세기 무렵에 실제 도시 사케타를 ‘아요디아’로 부르기 시작했다.
허왕후가 설령 인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아요디야에서 기념 행사를 하는 건 엉뚱해 보인다.
허왕후는 인도 사람일까요.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김해 납릉(김수로왕릉)의 정문 단청에 그려진 쌍어문과 주변 비석의 머리에 새겨진 문양, 김해시 구산동의 허왕후릉 옆 파사석탑 등을 제시하지만, 이광수 교수는 모두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정문 단청의 쌍어문(물고기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는 문양)은 조선 정조 때 그려넣은 것이어서 시기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사석탑은 김해시 구산동 허왕후릉 옆에 실제로 있지만 이 또한 증거능력이 취약하다는 게 이 교수의 견해입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가락국을 향해 출발한 허왕후가 풍랑을 만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데, 왕으로부터 이 탑을 받아 배에 싣고나서야 안전하게 가락국에 도착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이 교수는 (1) 당시 인도에는 불탑이라고 부를 돌탑이 없었다는 점 (2) 당시 인도의 항해술을 고려할 때 돌무더기를 가지고 풍랑을 이겨내며 그 먼거리를 항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 (3) 주술용이라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인도에서는 탑을 주술용으로 쓴 적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후대에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고 고려 시대에는 특이한 모양의 돌로 쌓은 탑을 숭배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같은 풍습이 불교와 만나 만들어진 설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 허왕후, 어떻게 ‘신화’에서 ‘역사’가 되었나
이 교수에 따르면 허왕후는 15세기 이후 실존 인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15세기면 조선시대죠. 거기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허왕후의 역사적 실체화는 조선조 양반 가문정치의 산물로 (중략) 당연히 격이 높은 성씨이 구성원들은 본관을 명예롭게 생각하게 되고 그 격을 더 높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했다. 이러한 현상이 조선 중기 이후 본격적으로 심화되었다. 허왕후가 역사적 실존인물이 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조선에서 상당히 지체 높은 가문으로 자리 잡은 양천 허씨가 허왕후를 적극적으로 역사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에는 아동문학가 이종기씨(1929~1995)가 <가락국탐사>라는 책을 써서 허왕후가 실제 인도에서 온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허왕후를 역사로 만든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이광수 교수가 지목하는 인물은 <김수로왕비 허황옥>, <허왕후 루트> 등의 책을 쓴 고고학자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입니다. “그는 20세기에 들어와 만들어진 이야기가 마치 ‘가락국기’ 기술 당시의 원형인 것처럼 말했고, 그것으로 수로왕 시대의 역사를 논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주로 검증이 필요하지 않은 언론에 무차별적으로 실었다.”
◈ 인도는 왜 허왕후를 좋아하나
허왕후가 인도에 알려진 것은 1980년대 이후 한국과 인도의 교류가 본격화하면서 인도에 부임한 외교관들이 허왕후 이야기를 꺼내며 친분을 쌓았고 반대로 한국에 부임하는 인도 외교관들도 그랬다.
김해시는 아요디아시와 지난 2000년 자매결연을 맺고 2001년에 인도 우프라 프라데시 주정부로부터 아요디아 지역 사라유 강변 인접 약 2,430㎡의 부지를 제공받아 허왕후 기념비와 공원을 조성했다. 2015년 방한 당시 모디 총리는 한국-인도 정상간 양국이 공동으로 허왕후 기념공원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해, 인도 정부가 사업부지와 공사비를 제공하고, 한국 정부는 설계공모를 통해 설계안을 선정하는 한편 디자인 감리를 맡기로 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념공원이 있는 아요디아가 현재 인도 집권당이자 힌두 근본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의 거점과도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다. 아요디아는 힌두교에서 라마신이 힌두교 군주의 이상 정치를 구현하는 곳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힌두 근본주의자들은 1992년 12월 라마 사원을 복원하다는 이유로 기존 이슬람 사원을 파괴했다. 이 과정에서 232명이 숨졌다. 김정숙 여사를 초청한 모디 총리는 2001년 구자라트에서 힌두교도들이 이슬람 교도를 습격해 집단 학살이 일어났을 당시 구자라트주 총리로 학살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로 최근에는 서울평화상문화재단이 모디 총리를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해 인권단체들이 ‘전두환에게 상을 준 꼴’이라며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힌두 근본주의 성향의 모디 총리와 인도국민당은 그동안 역사 교과서 개편을 추진해왔고 그 방향은 정치적 라이벌인 인도국민회의와 연관된 역사적 인물들을 깎아내리고 힌두교 우월주의를 강화하는 것 이에 따라 인도 서부 라자스탄 주에서는 2016년 공립학교 교과서에서 초대 총리 자오할랄 네루와 간디에 대한 내용을 삭제했다.
모디 총리는 2016년 고대사재검토위원회를 설치해 인도 지식인들로부터 신화와 역사를 혼동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 관련기사: 모디 총리 집권 4년, 인도 교과서 '역사왜곡' 논란
그렇다면 인도 총리가 허왕후 이야기를 보는 시각은 어떤 것일까요. 이광수 교수는 “아요디아에서 힌두 여인이 아시아 맨 끝 한국의 기원 초기에 그곳으로 건너가 왕비가 되었다는 사실은 힌두 문명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데 최고의 소재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맥락을 감안하면 김정숙 여사의 아요디아 허왕후 기념공원 착공식 참석은, 양국 친선이라는 좋은 명분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찜찜함이 남는 게 사실이다. “일개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주제로 벌어지는 수수께끼 같은 일에 일국의 대통령 부인과 장관이 국가를 대표한 사절로 참가하는 촌극”(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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