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은 '테라' 권도형, 인도 절차 시작…6개월 이내 범죄인 인도 여부 결정
한국과 미국은 '테라' 권도형, 인도 절차 시작…6개월 이내 범죄인 인도 여부 결정
┃포드고리차 고등법원, 6개월 이내에 범죄인 인도 여부 결정 / 몬테네그로서 범죄인 인도 절차 정식 개시 / 몬테네그로 위조여권 재판서 항변 / "나만 처벌해달라" 호소하기도 / 검찰 "나쁜 의도로 만든 불법 여권" / 법원, 19일 오후 2시 판결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몬테네그로 법원의 재판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에 발맞춰 한국과 미국이 신청해둔 범죄인 인도 절차도 본격 시작됐다.
16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조 여권 사건 재판에서 이바나 베치치 판사는 양쪽의 최후 변론을 들은 뒤 오는 19일 오후 2시에 판결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몬테네그로 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사용하려다 붙잡힌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 대표는 16일(현지시간) 문제의 여권이 위조 여권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권 대표는 이날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포드고리차 지방법원에서 열린 위조 여권 사건 재판에서 "친구의 추천으로 싱가포르에 있는 에이전시를 통해 모든 서류를 작성한 뒤 코스타리카 여권을 받았다"며 "벨기에 여권은 다른 에이전시를 통해서 받았다"고 밝혔다.
삭발에 가깝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법정에 들어온 권 대표는 "해당 에이전시를 통해 그라나다 여권을 신청할 때는 거절당했고, 코스타리카 여권을 신청할 때는 신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며 "또한 신뢰할만한 친구가 추천해준 에이전시였기에 에이전시를 신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코스타리카 여권으로 전 세계를 여행했다. 만약 위조 여권이라고 의심했으면 여러 나라를 여행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몬테네그로 국경을 통과했을 때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여권의 진위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권 대표는 다른 나라에 경제적으로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은 '경제 여권'을 받을 수 있다면서 아랍에미리트(UAE), 포르투갈 등에 그런 제도가 있으며 몬테네그로에서도 25만 유로(약 3억5천만원)만 내면 수개월 뒤에 여권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일을 도맡아서 하는 에이전시가 전 세계적으로 여러 곳 존재한다며 여권이 위조됐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전세기를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만약 코스타리카 여권이 위조 여권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걸 가지고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출국하려고 했겠는가"라며 반문한 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항변했다.
'테라' 권도형, 몬테네그로서 범죄인 인도 절차 정식 개시 그러나 권도형, 송환까지 장기전될 수도 여기에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도 변수…권도형"싱가포르 에이전시 통해 여권 취득해이 여권으로 전세계 여행했다" "위조 여권인 줄 알았으면 이런 자살행위 했겠는가
권 대표는 이바나 베치치 판사가 해당 에이전시의 명칭을 묻자 "중국말로 돼 있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권 대표가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출국을 시도할 당시 제출한 코스타리카 여권에는 실명과 진짜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지만 그가 소지한 또 다른 여권인 벨기에 여권은 가명과 가짜 생년월일이 기재돼 있었다.
권 대표는 이에 대한 베치치 판사의 질문에는 "에이전시에 문의해보니 벨기에 당국의 실수 때문에 잘못 기재된 것이라고 들었다"며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다 싶어서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벨기에 여권은 안 사용하고 코스타리카 여권만 사용했다"고 말했다.
권 대표의 새 법률 대리인인 고란 로디치 변호사는 "의뢰인들과 대화해보니 적법한 여권이라고 믿었고, 위조 여권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며 "이렇게 인텔리전트한(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부적합하게 일을 처리했겠느냐"고 변호했다.
권 대표는 함께 붙잡힌 측근 한모 씨에 대한 선처도 호소했다. 권 대표는 "그는 죄가 없다며 "위조 여권으로 처벌을 받게 되면 나만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한씨 역시 "나는 권씨를 철저히 믿었고, 에이전시가 적법하게 처리할 것으로 믿었다"고 했다.
다만 이들은 재판이 더 이상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코스타리카·벨기에 여권에 대한 재조사 신청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리스 샤보티치 검사는 "적법한 기관에서 발행된 여권이 아니다"라며 "벨기에 여권은 이름도 다르고 생년월일도 다르다. 나쁜 의도로 여권을 만든 게 분명하다. 적법하게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양쪽의 최후 변론이 끝난 뒤 베치치 판사는 오는 19일 오후 2시에 판결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권 대표는 한씨와 함께 지난 3월 23일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갖고 UAE 두바이행 전세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돼 공문서위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앞서 상급 법원인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전날 권 대표와 그의 측근 한모 씨에 대해 6개월간 범죄인 인도 구금을 명령했다. 이 기간에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 대표 등에 대한 범죄인 인도 여부를 결정한다.
하급심에서 진행된 권 대표 등의 위조 여권 사건 재판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상급 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절차가 개시된 것으로 보인다.
권 대표는 가상화폐 '테라·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다. 지난해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인한 전 세계 투자자들의 피해액은 5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테라·루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 4월 한국을 떠난 권 대표는 도피 행각 11개월째인 올해 3월 23일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출국하려다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체포돼 현지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테라·루나 사태 관계자들을 수사해온 서울남부지검은 당시 법무부를 통해 몬테네그로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지만, 미국도 거의 동시에 신병 인계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권 대표의 신병 확보를 놓고 양국이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권 대표를 어느 국가로 보낼지는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판단에 달렸다. 국제법에 따르면 피의자를 체포한 국가가 송환국을 정할 수 있다.
여러 나라가 동시에 인도를 요청할 경우, 범죄의 심각성, 범죄인 인도 청구 순서, 범죄자의 국적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다.
다만 재판부가 송환국을 어디로 결정하든 실제 송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이는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 징역형이 나오면 몬테네그로 현지에서 복역을 마친 뒤에야 우리나라나 미국으로 넘겨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마르코 코바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지난 3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권 대표가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해 몬테네그로에서 형을 선고받으면, 형기를 복역해야만 인도를 요청한 국가로 인도될 수 있다"고 못 박은 바 있다.
몬테네그로 현지법에 따르면 위조 여권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면 최저 3개월에서 최고 5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권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도 변수다. 몬테네그로 특별검찰청은 이날 재판을 마친 권 대표를 소환해 조사에 나섰다.
권 대표는 몬테네그로 조기 총선(11일)을 며칠 앞두고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야당의 거물 정치인에게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폭로하는 편지를 드리탄 아바조비치 총리, 코바치 법무부 장관, 블라디미르 노보비치 수석 특별검사에게 보냈다.
아바조비치 총리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한 권 대표의 '옥중 편지'에 몬테네그로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만약 몬테네그로 특별검찰청이 이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고,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기소한다면 새로운 재판이 시작돼 송환 일정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몬테네그로 현지 언론매체인 '리베르타스'의 알렉산드라 마티차 기자는 "권도형은 6개월 이내에 송환될 수도 있다"며 "하지만 변수가 워낙 많아서 상황이 애매하다. 아직은 어떤 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