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 시제1호기 생산완료…개발비 8조8000억원, 비행시험까지 20년 ‘단군 이래 최대 사업
KF-21 시제1호기 생산완료…개발비 8조8000억원, 비행시험까지 20년 ‘단군 이래 최대 사업
┃국산 KF-21 전투기 시제1호기 지상 시험 8일 공개했다. / 미국 전투기 안사고 KF-21 만든 ‘무모한 도전’ / “엔지니어들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지난 6일 실시된 국산 KF-21 전투기 시제1호기 지상 시험이 8일 공개됐다. 한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짧은 평가를 남겼다. 말은 짧았지만, 그 말 속에는 험난했고 어려웠던 KF-21 개발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공군의 노후한 F-4, F-5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만든 KF-21은 개발비 8조8000억원, 소요결정 후 비행시험까지 20년이 걸린 ‘단군 이래 최대 국방연구개발’ 사업이다.
T-50 훈련기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전투기를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 항공우주산업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겠다는 KF-21 개발 사업에 대해 군 안팎에선 “무모한 도전”이라는 우려는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체계통합을 맡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비롯한 국내 방위산업계는 이같은 우려를 불식하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우리 손으로 비행시제기를 만들었다. 시제1호기가 이달 중 첫 비행시험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 초음속 전투기 개발국이 된다.
하지만 KF-21이 ‘개발완료’라는 상징적 차원을 넘어 공군 전력 증강과 해외 시장 진출 활성화를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KF-21 항공무장은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전투기에 장착하는 폭탄과 미사일이 빈약한 KF-21은, 바뀐 게 없다
전투기에 장착하는 폭탄과 미사일은 해당 기체의 공격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KF-21은 어떨까. 최신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 등을 탑재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반면 항공무장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방위사업청이 최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KF-21 공대공 무장은 미티어와 AIM-2000 미사일이다. 공대지 무장은 GBU-12·31·38·39·54·56 폭탄과 MK-82·84 폭탄, 한국형정밀유도폭탄(KGGB),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중인 장거리 공대지미사일(ALCM)이다.
지난해 4월 방위사업청이 밝힌 것과 같은 수준이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추가된 무장은 없다는 의미다. GBU 계열 항공무장이 KF-21 탑재 무장(12종)의 절반에 달하는 현실도 변함이 없다.
그나마 KF-21을 KF-16, F-15K와 차별화하는 요소는 공대공 능력이다. 영국 MBDA가 개발한 미티어 공대공미사일은 아시아 최초로 전투기에 적용됐다.
미티어는 음속의 4배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 최대 200㎞ 떨어진 곳에 있는 적기를 격추할 수 있다. 조종사가 미사일을 발사한 후 목표물 재설정이 가능하다. 미국의 AIM-120 암람 미사일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미티어의 존재는 KF-21이 한반도 유사시 북한 공군을 압도하고, 주변국 공군과의 제공권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공대지 무장은 논란을 빚고 있다. KGGB는 노후 기종으로 퇴역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는 F-5, MK-82·84는 베트남전쟁 당시부터 쓰인 재래식 폭탄으로 F-4, F-15K 등에도 쓰인다.
GBU 계열 폭탄도 KF-16, F-15K에서 쓰이는 것이 많다. 냉전 시절 개발됐고, KF-21보다 훨씬 먼저 한국 공군에 도입된 기종과 비슷한 항공무장을 KF-21이 쓰는 셈이다.
이에따라 공격력 측면에서는 사실상 KF-16, F-15K와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대함 능력과 지상 레이더 파괴능력은 현재 기준으로 볼 때 KF-16, F-15K보다 오히려 뒤처져 있다. 이는 KF-21이 4세대 전투기인 KF-16과 F-15K보다 일부 분야에서 앞서는 4.5세대 전투기라는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 KF-21은 “탑재 무장 종류 단계적으로 확보할 것”
방위사업청은 현재 “단계적으로 무장을 확보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지만 한국형전투기사업단 체계총괄팀장은 “F-35도 모든 무장을 갖고 있지 않다. 단계적으로 무장을 확보한다”며 “군의 소요와 수출에 필요한 무장을 통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F-35의 경우는 어떨까. 스텔스 성능을 유지하고자 F-35는 내부무장창에 기본 무장인 공대공미사일과 기관포, 합동정밀직격탄(JDAM)을 탑재할 수 있다.
하지만 F-35는 추가로 장착 가능한 첨단 무장도 많다. 공대지미사일은 재즘(JASSM), 스피어3, JSM, 스톰 섀도우 등을 탑재한다. 공대공미사일도 AIM-120과 AIM-9, 미티어, 아스람을 장착한다. 전술핵무기인 B61을 제외해도 F-35에 탑재 가능한 항공무장은 20여 종류에 달한다.
미국은 AIM-120을 대체하기 위해 속도와 정확도 등이 크게 향상된 AIM-260도 개발중이다. 또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네트워크 체계, 센서 융합에 의한 정보 제공 능력을 앞세워 제공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KF-21은 F-35보다 늦게 등장했지만, 국내 기술 제약 등으로 스텔스나 센서 융합 등의 분야에서는 F-35와 비교해 경쟁 우위를 갖추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이를 만회하려면 기존 4세대 전투기와 차별화되는 수준의 공격력을 갖추는 고민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KF-16·F-15K와 큰 차이가 없고, 폭탄의 비중이 높다.
이를 두고 방위사업청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정책 결정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 방위사업청과 KAI가 체계개발 계약을 체결한 직후 2020년 9월 시제기 최종조립에 착수하기까지는 약 5년에 달하는 시간이 존재했다.
이 시기는 문재인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일부 해외 업체들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KF-21에 장착할 수 있는 새로운 정밀유도무기를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항공무장을 새롭게 발굴해 KF-21에 체계통합하는 작업도 충분히 가능했다.
KF-21의 전력화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 공군 전력공백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검증된 우수한 항공무장을 KF-21 개발 단계서부터 하나라도 더 통합했으면 전력화 초기 단계서부터 KF-21이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미티어 미사일을 제외하면, 선진국이나 한국 공군에서 운용중인 기종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항공무장 위주다.
“이런 식이라면 ADD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개발을 기다리면서 F-15K에서 쓰는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KF-21 블록1에 탑재해 공격력을 조기에 끌어올려도 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 정부가 지난해 4월에 열렸던 시제1호기 출고식처럼 자주국방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외형’에만 신경을 쓰고, 실제로 싸워서 이기는데 필요한 ‘내실’을 키우는 작업은 소홀히 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막강한 공군력을 지닌 주변국과의 경쟁에 대처하려면 항공무장을 시급히 해결해야
일각에서는 항공무장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않으면, KF-21은 노후한 F-4, F-5 대체 효과에 머물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력승수의 대폭 상승 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미다.
FA-50 경공격기의 사례를 보면 A-37 공격기를 대체하고자 KAI가 T-50 훈련기를 토대로 개발한 FA-50은 상당한 잠재력이 있다.
EL/M-2032 레이더 탐지 범위가 100~150㎞에 달해 전투기로서의 기본 상황인식 능력과 중거리 공대공 전투능력을 발휘할 토대를 갖췄다.
하지만 공대공 무장은 AIM-9L(사거리 7㎞)에 불과하다. 공대지 무장도 AGM-65D는 사거리가 25㎞다. 레이더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낡은 A-37을 새로 만든 기체로 바꿨다는 의미만 있는 셈이다.
FA-50 60대를 도입한 공군은 F-5 등 노후 기종 문제가 심각해지자 일부 수량을 추가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추가 성능개량이 없다면, 노후 기종을 단순히 새 것으로 바꿔주는 효과 외에는 기대하기가 힘들다.
KF-21도 마찬가지다. 단계적 방식의 무장 추가 장착을 추진한다면, KF-21을 실제로 사용할 공군은 신형 기체를 도입하는 효과를 빠르게 얻기가 쉽지 않다. 소요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최근 전투기 개발 추세를 감안할 필요도 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2030년대 6세대 전투기를 전력화할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주변국 공군과의 전력 격차 해소가 시급한 공군 입장에선 시간이 걸리는 단계적 무장 장착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정확도와 파괴력이 우수한 항공무장을 단기간 내 최대한 많이 장착해 공격력을 높이고 전력화시기를 앞당기면, 전력증강과 더불어 잠재적 수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늘어나 수출 경쟁력도 높아진다.
단순한 노후 기종 교체 차원을 넘어서서 공군 전력승수가 크게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KF-21은 훈련기와 헬기 개발 경험만 지니고 있었던 한국에는 상당한 도전이었다. 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무모한 일” “외국서 사오는게 더 낫다”는 등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의 피땀어린 노력 덕분에 KF-21은 지상시험을 거쳐 첫 비행을 눈앞에 두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전투기는 여객기와 달리 비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단기간 내 최대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막강한 공군력을 지닌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효율적으로 대처하려면 항공무장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고 완전작전능력(FOC) 확보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KF-21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공격력 증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