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헬기 기술력 무인기로 이어져…한땀 한땀 손으로 빚은 '수리온'
K-헬기 기술력 무인기로 이어져…한땀 한땀 손으로 빚은 '수리온'
|K-헬기 조립에 16개국 주 한대사단 감탄 / 한땀한땀 손으로 빚은 '수리온' 한 달 6대 생산 / 실제 같은 LAH VR 시뮬레이터 / 헬기 기술력 무인기로 이어지며 방산수출 / “성취감 크지만 자괴감도”
"KAI에서 직접 헬리콥터 조립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필리핀에도 능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많은데 그들이 KAI와 협력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필리핀은 몇 년 전 KAI로부터 매우 중요한 방위자산인 FA-50을 도입했던 만큼, 앞으로도 KAI와 협력관계가 깊어지길 기대합니다."(마리아 테레사 주한 필리핀 대사)
'K-전투기'에 이어 'K-헬기'가 방산 수출 새 먹거리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지난 30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 회전익동에서 국산 헬기를 조립하는 현장을 지켜본 마리아 테레사 주한 필리핀 대사는 연신 감탄하며 KAI와의 추가 협력 의사를 내비쳤다.
이날 필리핀을 포함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방글라데시 등 16개국 주한대사가 KAI 회전익동 조립 현장을 방문했다. 모두 한국산 헬기가 조립되는 과정에 눈을 떼지 못했다. KAI의 헬기 수출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듯 보였다.
◈ 한땀한땀 손으로 빚은 '수리온'…한 달 6대 생산
회전익동은 약 1만7851㎡(5400평) 규모로 기둥이 없는 격납고 형태로, 유동적으로 생산라인을 재배치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공간에서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KUH)과 소형무장헬기(LAH) 시제기의 조립 작업이 한창이다.
헬기의 조립 단계는 7개 공정으로 돼 있다. 각 공정이 마무리되면 다음 단계가 진행된다. 헬기 몸통 부분인 중앙 동체 조립부터 시작해 앞 뒤로 조종석과 꼬리를 연결한다. 이후 배관, 연료탱크, 기어박스, 엔진 등을 탑재한다. 각 공정마다 약 8~13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회전익동의 한 달 생산량은 약 2.5대 규모다.
아직 도색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노란색 동체 각각엔 엔지니어 2~3명이 붙어 엔진을 탑재하거나 케이블을 설치하는 등 맡은 공정을 진행된다. 헬기 역시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정교한 작업을 위해 용접 대신 리벳으로 동체를 연결한다. 수리온은 동체를 연결하는 리벳만 20만 개에 이른다.
KF-21 등을 조립하는 고정익동의 경우 자동화 시스템인 FASS(동체자동체결시스템)를 도입했지만 회전익동은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물량이 많은 고정익과 달리 회전익은 아직 수출 실적이 없어 자동화율이 낮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KAI가 군과 정부기관에 납품한 헬기는 200여 대 규모다.
◈ 실제 같은 LAH VR 시뮬레이터…직접 체험해보니
KAI는 올해 말 개발이 완료되는 LAH의 VR 시뮬레이터도 최근 완성했는데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훈련기엔 실제 LAH 계기판을 그대로 넣고 조종석도 실제와 같게 만들었다. 두 명이서 운전하는 시스템이고, 인당 조종간 두 개를 잡고 운항한다. 오른쪽 조종간은 좌, 우, 앞, 뒤로 움직이게 하고 왼쪽 조종간은 기체를 위로 올리고 내리는 역할을 한다.
페달도 있었지만 자동비행 시스템이 적용돼 규정 외 급기동 훈련을 제외하곤 쓸 일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착륙과 가장 어렵다는 제자리 비행, 목표물 사격까지 진행했다. 양쪽 엔진이 다 꺼졌을 때 안전하게 비상 착륙하는 시범도 볼 수 있었다. 대형 스크린이 실제 비행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줬다.
KAI 헬기 조종사는 "평소에 못 하는 위험한 훈련들을 실제와 비슷한 훈련기에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훈련장비도 세계적인 수준을 갖춰 우리 군의 만족도가 높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 헬기 기술력 무인기로 이어져…방산수출 꿈나무
아직 전투기 등 고정익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지만, KAI는 회전익 부문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향후 새로운 수출 먹거리가 될 수 있고, 결국 헬기 기술력이 드론·무인기 등 미래전(戰)의 핵심 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KAI 관계자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후발주자인 만큼 동급에서 최신형 헬기를 보유하고 있어 노후 헬기 교체를 원하는 국가들의 수요가 클 것"이라며 "기존에 KAI의 T-50 계열 항공기를 수출한 국가들, 산지와 섬이 많은 동남아시아 위주로 마케팅을 적극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헬기 사업은 미래 핵심기술인 무인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KAI는 지난해 10월 방위사업청과 '21년 신속시범획득사업인 '헬기-무인기 연동체계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헬기에서 무인기를 직접 조종·통제하고 무인기 영상정보를 실시간으로 조종사에게 제공함으로써 원거리 정찰·타격 등 작전반경을 확장하는 유무인 복합체계(MUM-T)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KAI는 헬기에 탑재가 가능한 캐니스터(Canister)형 무인기 개발을 통해 국산헬기 수리온과 LAH의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축하고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KAI 관계자는 "KAI는 3년 전 헬기 형태로 무인화를 성공한 적이 있다"며 "비행체에 무인화 작업만 하면 무인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헬기 기술력이 드론·무인기와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헬기 기술력을 보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KAI는 현재 65% 수준인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핵심 장비인 주기어박스 등 동력전달장치의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개발비로 약 792억 원을 투자했다. 2030년까지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전량 외산에 의존하는데 국산화가 되면 약 4조1000억원 규모의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KAI는 LAH 양산과 더불어 해군 상륙공격헬기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헬기 사업을 지속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KAI 관계자는 "국내에서 헬기 개발이 많이 진행돼야 앞으로 헬기 수출이 용이해질 것"이라며 "국내외 사업 기회를 넓히기 위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동헬기로 소방, 경찰, 기업 등 특정 기능이 추가된 형태로 조립돼 납품된다”
옆 건물의 회전익(헬기) 조립라인에서는 경찰과 경남소방청 등에서 주문받은 헬기가 조립되고 있다.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헬기 조립도 상당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방위력 개선 프로젝트 차원서 개발한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KUH)을 민수용으로 응용한 헬기들이다. 소방, 경찰, 기업 등 주문자 요구에 따라 특정 기능들이 추가된 형태로 조립돼 납품된다”고 말했다.
카이는 항공기 날개를 기준으로 ‘고정익’과 ‘회전익’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고정익 부문에선 기본 훈련기(KT-1)와 고등 훈련기(TA-50)를 양산해 공군 납품과 수출(태국·말레이시아 등)을 시작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와 손잡고 한국형 전투기를 개발 중이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은 2015년 시작돼 지금은 시제기 조립 단계이고, 지상 테스트와 시험비행 과정을 거쳐 2024년 중반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회전익 부문에선 수리온을 개발해 군 납품과 수출(캄보디아·인도네시아 등)을 시작한데 이어 소형 공격용 무장헬기를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카이의 전투기·헬기 사업은 국방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방위력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해 전투 훈련기와 전투기 등을 개발하며 기술을 축적하고 부품을 국산화한 뒤, 양산 시점에서 수출과 민수용 파생 상품 시장을 개척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 차세대 기동 헬기 국내 개발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창헌 카이 미래사업부문장은 “고정익 쪽에선 한국형 전투기를 2024년부터 양산하면서 성능을 개량한 전투기와 군 수송기 같은 특수 임무기 개발에 나서고, 회전익 쪽에선 차세대 기동 헬기 국내 개발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래 사업으로 전기 항공기 같은 미래형 비행체(UAM) 개발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방위력 개선 프로젝트 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부터 양산까지 수년(헬기)에서 수십년(전투기)까지 걸린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며 “2015년부터는 우리 전투기로 우리 영공을 지키게 하겠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7번의 예비타당성 심의 끝에 2015년 개발 계약을 맺어 지금에 이르렀다.
물리와 소재 전공자부터 시험비행 조종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력이 전투기와 헬기 개발에 투입된다. 지난달 말 기준 카이 임직원 4986명 중 43%가 직접 개발 인력이다. 조립라인에서 공구를 들고 케이블 묶음 작업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도 개발자와 엔지니어들이다.
수작업 비중이 큰 탓에 부품이 다 준비된 상태로 양산을 시작한 뒤에도 전투기 한대를 완성하는데 2년가량 걸린다. 전투기 부품 종류는 22만여가지로 자동차 부품 수의 열배에 이른다. 그만큼 전후방 산업 쪽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전투기 개발의 이런 특별한 과정 때문에 오해와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언론이 1호기가 다시 속을 드러낸 채 지상 테스트를 받고 있는 모습을 뭔가 기술적 문제가 있어 분해·해체 작업을 거치는 것처럼 보도해 논란을 부른 게 대표적이다.
◈ 전투기와 헬기 기종 하나를 개발하는데 평생을 바쳐야 하기도
“정상적인 개발 과정인데,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다시 작업하는 것처럼 엉뚱하게 전해 한국형 전투기 사업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일본어판 기사에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을 조롱하는 댓글까지 붙었다”고 하소연했다.
전투기와 헬기 기종 하나를 개발하는데 평생을 바쳐야 하기도 하고, 그래봤자 결국은 살상용 무기를 만드는 것이란 주력 사업의 특성 탓에 임직원들이 느끼는 감정도 복잡하단다. 김 그룹장은 “고등 훈련기가 초도비행을 마치고 활주로로 들어설 때는 직원들이 공장 옥상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전했다.
다른 고위 임원은 “훈련기 수출 뒤 수령자로부터 ‘덕분에 적군을 죽이는 훈련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카이의 올해 매출 목표는 2조8천억원이다. 군수 쪽 비중이 65%로 가장 많고, 민수는 21%, 완제기 수출은 14%를 차지한다. 카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민수용 수요가 줄면서 군수 비중이 20%포인트 가량 높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