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아들 화천대유 50억 퇴직금' 뇌물 무죄…녹음된 김만배 육성, 증거 인정 안돼
곽상도, '아들 화천대유 50억 퇴직금' 뇌물 무죄…녹음된 김만배 육성, 증거 인정 안돼
법원, 다른 사람과 대화 전하는 '전문진술' 원칙적으로 증거 배제 / 법원 "액수 이례적으로 크지만 대가성이라고 보기 어려워" / 곽 전의원 아들, 법정에서 "돈 요구 안했다" 진술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대장동 일당'에게 아들의 퇴직금과 성과금 명목으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는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8일 곽 전 의원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뇌물공여와 횡령 혐의로 기소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곽상도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대장동 일당'의 대화 녹음파일 속에 담겼으나 뇌물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 '전문(轉聞)진술'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법리에 따라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전날 선고한 곽 전 의원의 판결문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효력(증거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고 근거를 설명하는 데 약 40쪽을 할애했다.
이 가운데 핵심은 대장동 사건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꼽히는 회계사 정영학씨의 녹음파일이다. 정씨는 2012년부터 김만배씨 등과 나눈 대화를 녹음했고 이 중 일부는 곽 전 의원 재판에도 증거로 제출됐다.
2020년 4월 4일 녹음된 파일에서 김씨는 정씨에게 "병채 아버지(곽상도)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천만원"이라고 말한다.
이어 "그래서 '뭘? 아버지가 뭐 달라냐?'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건지' 그래서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양 전무보다 많으니까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냐'"라고 말한다.
김씨가 곽병채씨와 나눈 대화를 정씨에게 전한 것으로, 이 대화 내용이 사실이라면 곽 전 의원은 아들을 통해 김씨에게 수상한 돈을 요구한 것이 된다.
재판부는 이 녹음파일이 '김씨가 정씨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만 효력이 있을 뿐, '김씨가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쓰일 순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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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정씨에게 전달한 곽병채씨와의 대화 내용이 형사소송법상 원칙적으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전문진술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형사소송법은 전문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려면 원진술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또는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진술할 수 없고 전문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 증명돼야 한다고 정한다.
김씨는 재판에서 "정씨와 대화하면서 이같은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곽병채와 그런 (곽 전 의원이 돈을 요구한다는) 대화를 한 일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곽병채씨도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요구한 일이 없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다만 재판부는 2019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정씨의 녹음파일 가운데 전문증거가 아닌 원진술에 해당하는 내용은 대부분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종합하면 녹음파일 속 대화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 '원진술' 부분은 증거로서 효력이 있으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 '전문진술' 부분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 같은 판단은 향후 대장동 사건의 본류인 배임 혐의 재판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곽 전 의원의 뇌물 수수를 인정하지 않은 형사합의22부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김씨, 정씨, 남욱, 정민용씨 등의 배임 사건도 심리하고 있다.
재판부는 전날 곽병채씨가 화천대유에서 퇴직금, 성과급 조로 받은 50억원이 이례적으로 큰 액수라면서도 그가 경제적으로 독립해 곽 전 의원이 돈을 직접 받았다고 평가할 수 없고 대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뇌물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벌금 800만원을 선고하고 5천만원을 추징하라고 명령했다. 곽 전 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공여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남욱씨는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의혹이 불거진 이래 핵심 관련자에 대한 사실상 첫 판결이다.
앞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곽 전 의원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50억여원을 선고하고 25억원을 추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씨에겐 징역 5년, 남씨에겐 징역 1년을 각각 구형했다.
곽 전 의원은 2021년 4월 화천대유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아들 병채씨의 퇴직금과 상여금 명목으로 50억원(세금 등 제외 25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50억원 중 소득세와 고용보험, 불법으로 볼 수 없는 실질적 퇴직금 등을 제외한 25억원을 뇌물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곽상도 피고인의 아들 곽병채에게 화천대유가 지급한 50억원은 사회 통념상 이례적으로 과다하다"며 "김씨가 남씨 등에게 병채씨를 통해 곽 전 의원에게 50억 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해왔고, 정영학 회계사 등과 구체적 지급방안을 논의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봤다.
그러나 "김씨는 남씨, 정 회계사와 대장동 사업 공통비 분담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자 곽 전 의원 등 이른바 '약속클럽' 사람들에게 50억원씩 줘야 한다는 말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곽 전 의원에게 줘야 할 50억원과 성남의뜰 컨소시엄 문제를 연결 짓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 부분에 관한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50억원이 알선과 연결되거나 무엇인가의 대가로 건넨 돈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곽상도 피고인이 아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의심이 드는 사정도 있지만, 결혼해 독립적 생계를 유지한 곽병채가 화천대유에서 받은 이익을 곽상도 피고인이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곽 전 의원이 제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남씨에게서 현금 5천만원을 받아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는 유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자로서 기부금을 한도액까지 받은 상태에서 정치자금법이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현금을 받았고 수수한 금액이 적지 않다"며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곽 전 의원은 이 돈을 '정치자금이 아닌 변호사 보수'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법률 상담에 따른 대가로서는 지나치게 과다해 정당한 변호사 보수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이 끝난 후 곽 전 의원은 "무죄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며 "내부 절차에 맞게 직원에게 성과급을 줬다고 했을 뿐 (아들이 받은 돈이) 나와 관련 있다고 말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객관적인 증거 등으로 확인된 사실관계에 비춰 재판부의 무죄 판단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판결문을 상세히 분석한 후 적극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대장동 일당'에게 아들의 퇴직금과 성과금 명목으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는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이 선고됐다.
뇌물공여와 횡령 혐의로 기소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도 무죄를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