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으로 단일팀 밀어 붙이는 정부와 체육회…침묵하는 아이스하키 협회

2018. 1. 17. 05:08남북 · [ 회담 ]

힘으로 단일팀 밀어 붙이는 정부와 체육회침묵하는 아이스하키 협회

 

 

"선수 보호를 하지 못하는 협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거든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피해를 안 가게끔 저희는 최선을 다할 거고요. (..중략..) (단일팀 안이) 진전이 되면 협회는 (우리 선수들을) 보호하는 안을 갖고 저희가 대한체육회에도 낼 것이고, IOC는 직접 못 내면 IIHF, 세계 아이스하키 연맹을 통해서 저희 의견을 분명히 내서 관철되도록 저희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열 일하는' 평창 홍보대사,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지난해 1223일 토요일 올림픽 공원에서 남자 고등학교 팀을 상대로 야외 경기를 치렀습니다. 모든 게 이상한 평가전이었습니다. 진천 선수촌에서 훈련을 해오던 선수들은 26일부터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었고,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주말에는 통상적으로 휴식을 취하며 전지훈련 채비를 갖추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1220일 전후로 한파가 몰아치던 상황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야외 경기를, 그것도 남자 선수들(여자 하키는 남자와 달리 보디체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러다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지, 부상을 당하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더구나 대표팀에는 이미 부상을 당한 선수가 3명이나 있었고, 미국에 집이 있는 몇몇 선수가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미국으로 먼저 떠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 대표팀에 뛸 수 있는 선수는 골리 2명을 포함해 17명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아이스하키 협회 고위 관계자에게 이런 경기를 대체 왜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평창 올림픽 G-50을 맞아 평창 올림픽 조직위와 체육회에서 추진하는 공식 행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원래 상대팀도 중국 여자 대표팀으로 하려고 했는데 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성사가 안 돼 경기 2~3일 전 남자 고등학생팀으로 변경됐다고 했습니다.

 




선수들이 안 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올림픽의 홍보와 성공 개최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평창 올림픽만을 꿈꾸며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의 사정이 이미 영화나 CF, 기사를 통해 많이 알려진 만큼,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최고의 올림픽 홍보대사로 손색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현장에 취재를 가서 마음 졸이며 경기를 지켜봤고 (급조한 야외 펜스는 가운데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서 선수들이 그곳에 부딪힐까 봐 더더욱 마음 졸였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선수들도 부상 없이 무사히 경기를 마쳤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전체 국가대표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틀 동안(22일에는 올림픽 공원 야외 링크에서 어린이들을 지도하며 홍보 활동을 했습니다.) 훈련과 휴식을 포기한 채 G-50 행사에 전념한 뒤 전지훈련을 떠났습니다.

 

침묵하는 아이스하키 협회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들은 이 전지훈련을 다녀오자마자 단일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평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올림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선수들에게는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 힘든 시간일 것입니다. 과연 단일팀이 확정될지, 북한 선수들이 몇 명이나 올지, 내가 아니면 내 동료가 벤치만 지켜야 하는 건 아닐지. 숱한 생각이 들어서 훈련에 전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일팀이 추진될 경우 선수들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던 대한아이스하키 협회는 아직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스하키 협회 고위 관계자는 전화 통화를 통해 "단일팀을 추진하겠다는 정부와 대한체육회의 입장이 확실한 상황에서 현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대안이나 방안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를 대비한 대책 회의 일정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정 회장이 지난 7월에 밝혔던 협회의 존재 이유가 불과 6개월 만에 사라진 걸까요? 선수들 스케줄이나 상대도 고려하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보여주기식 평가전'을 하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선수 구성까지 해야 한다면 (정 회장의 말대로) 협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정몽원 회장 취임 후 비약적인 발전을 했습니다. 많은 투자가 있었고 선수들의 기량도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피해가 자명한 상황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협회의 노력, 그리고 선수들과의 신뢰가 모두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선수들의 목소리에, 여론에 귀를 기울여 정 회장의 공언대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협회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