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은 '보류' 지시에 북한군 신속행동…'상황관리' 필요성 인식한 듯

2020. 6. 24. 13:01북한 · [ 종합 ]

북 김정은 '보류' 지시에 북한군 신속행동'상황관리' 필요성 인식한 듯

 

 

 

북한 선전매체, 대북전단 살포 비난 기사 대거 삭제확성기 설치 사흘만에 철거

 

김정은 '보류' 지시에 북한군 확성기 사흘만에 철거 / 북도 '상황관리' 필요성 인식한 듯 / "대남전단도 일단 중지 가능성"있어 / 북한 선전매체, 대북전단 살포 비난 기사 대거 삭제 / 김정은, 김여정 주도 대남 강경조치에 일단 제동 / 역할 분담 주목 '김정은=해결사역·김여정=악역' / 정상간 해결 마지막 고리로 남긴 듯 / 김정은과 김여정의 이런 역할 분담은 올 들어 시작했다. / 2018년 판문점선언으로 확성기 방송이 전면 중지됐었다.

 

북한이 확성기 재설치 사흘만인 24일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을 일부 철거하는 정황이 포착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한 것과 관련되어 보인다. 나아가 남북 군사적 긴장감을 더 끌어올리지 않고 일단 숨 고르기를 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강원도 철원군 평화전망대 전방 북측지역 등에 재설치한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 10여개를 철거하는 동향이 포착됐다. 북한은 지난 21일 오후부터 재설치 작업에 전격 착수해 30여개를 설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재설치한 확성기 가운데 10여개를 철거했으나 철거 작업이 계속되고 있어 추가 철거되는 곳은 늘어날 전망이다. 이어 군 당국은 북한이 확성기 방송 시설 재설치와 철거를 전격적으로 단행하는 의도를 현재 정밀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1200만장의 삐라(대남전단)와 풍선 3천개를 제작해 승인만 기다리고 있다는 전단 살포 계획도 당분간 중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군 당국은 분석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일단 당중앙군사위 본회의가 열릴 때까지는 확성기와 전단을 보류할 것"이라며 "북한은 남측의 전단 살포 제지 등의 움직임을 봐가면서 추후 열릴 본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간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삐라가 살포되고 확성기 방송이 재개될 경우 남북 군사적 긴장감이 급속히 고조되고 이에 따른 우발적 무력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여기에다 20184·27 판문점선언 이후 급진전했던 남북관계가 한동안 교착 국면에 놓였고, 북한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한 이후에는 남북 모두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북한이 "예비회의에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조성된 최근 정세를 평가하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5차 회의에 제기한 대남 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북한도 상황 관리 필요성을 판단한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확성기는 대형 스피커와 음향조종 시설 등으로 이뤄진다. 북한은 이미 철거했던 40여 곳에 확성기 시설을 복원할 것으로 예측되어 왔다. 북한이 삐라 살포 예고에 이어 확성기 방송 시설을 재설치한 것은 남측에 계속해서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됐다.

 

 

북한 통일전선부 대변인은 지난 5일 담화에서 삐라 살포 등을 언급하며 "우리도 남측이 몹시 피로해 할 일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차(이제부터) 시달리게 해주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고 최전방 근무 군인들의 월북 등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1962년부터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 남측도 이듬해 51일 서부전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맞물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개시했다.

 

남북은 200464일 제2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 우발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일대 선전활동 중지'에 대해 합의한 이후 최전방의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을 철거했다.

 

그러나 20103월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MDL 일대에서 철거한 확성기 방송시설을 재구축했으며, 2015년 북한의 DMZ 지뢰 도발로 재개했다가 같은 해 중단했다. 이후 20161월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개시했다.

 

이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대외선전매체의 대북전단 살포 비난 기사 여러 건이 일시에 삭제됐다.

 

24'조선의 오늘''통일의 메아리', '메아리' 등 대외 선전매체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이날 새벽 보도된 대남비난 기사 13건이 반나절도 안 돼 모두 삭제됐다.

 

조선의 오늘에서는 전 통일부 장관의 입을 빌어 남측 정부를 비판한 '뼈저리게 통감하게 될 것이다' 기사를 비롯해 총 6개의 기사가 자취를 감췄다.

 

통일의 메아리도 남북관계의 파탄 책임을 남측으로 돌린 '과연 누구 때문인가' 2, 메아리에서는 주민 반향 등을 포함한 4건이 삭제됐다.

 

이어 북한 전 주민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이날 자에 전단 관련 비난 기사를 일절 싣지 않았다. 이들 매체는 전날까지만 해도 연일 대남 비난 기사를 실으며 적대 여론몰이에 주로 이용돼 왔다.

 

이 같은 기사 삭제 조치는 이날 오전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6.23)에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후 이뤄졌다.

 

북한은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는 대남전단 실물을 공개했다. 이튿날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서는 "삐라(전단) 살포가 북남합의에 대한 위반이라는 것을 몰라서도 아닐뿐더러 이미 다 깨어져 나간 북남관계를 놓고 우리의 계획을 고려하거나 변경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22일에는 자신들은 보복용으로 대남전단 1200만장과 풍선 3천여개를 준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선전매체에서 전단 살포에 나서겠다고 위협하는 기사를 삭제하면서 북한이 대남전단을 뿌릴 가능성이 작아졌다. 그간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로 남측을 맹비난했던 북한이 당 중앙 군사위원회 예비 회의를 계기로 급격히 긴장 수위를 낮추며 완화 분위기로 전환하는 모양새로 풀이된다.

 

한편 남북관계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과정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역할 분담이 확연히 드러나 눈길을 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먼저 거친 대남 비난을 쏟아내면서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이끌어가는 악역을 도맡았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나중에 나서 파국을 막는 조치로 착한 조정자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이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전날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5차 회의 예비회의를 주재하고 그동안 북한이 탈북민단체의 전단 살포를 이유로 남측에 선언했던 군사행동 계획을 전격 보류했다.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대남 강경 군사행동 조치가 취해진다면 그것은 고스란히 김정은 위원장의 최종 결정에 따른 것으로 결정의 책임지게 되는데 '보류 결정'으로 이를 엎어버린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지휘 아래 당 통일전선부와 군 총참모부 등 관련 부서들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잇단 군사행동을 예고하면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한껏 높이던 국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해결사'로 깜짝 등장한 셈이다.

 

이날 김 위원장은 여동생인 김여정을 악역으로 내세워 자신을 비난한 대북전단 살포의 중대성을 충분히 알렸고, 이를 기회로 지난 2년간 남측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쌓여온 불만이 얼마나 큰지를 전부 쏟아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나름 성과를 이뤘다는 판단아래 김정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긴장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결국 이는 남북관계의 총체적 파국 속에서 최고지도자의 해결사 역할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려는 전략적 의도로 풀이된다.

 

김 제1부부장이 지난 33일 북한의 발사체 발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감 표명에 첫 담화를 냈으나, 이튿날인 34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이어 5일에는 문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 친서를 보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남북관계의 파국을 지휘한 김여정의 악역이 김여정의 권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다.

 

지난 4일 김여정의 대남 강경조치 담화가 나온 후 당 통일전선부와 군 총참모부 등 관련 부서 기관들이 나서 김여정의 담화 이행 지시를 언급하고 심지어 노동신문 등에 북한 간부의 주민들의 김여정 담화 실행 결의가 실리는 등 북한 사회에 김여정의 지위는 확실히 각인됐다.

 

김여정의 대남 행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재가를 받아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가 명실공히 실제 권력의 2인자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국정운영 동반자 수준에 와있음을 보여준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13일자 담화에서 관련 부서들에 대남 강경조치를 지시하면서 "(김정은)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하여"라고 밝혀 자신의 지위를 우회적으로 공개했다.

 

김여정이 현재 가진 공식 직책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며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공식 서열은 2인자와 거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가 최고지도자의 여동생인데다 모든 간부 인사와 당생활 및 업무를 통제하는 당내 권력 서열 1위 조직지도부의 제1부부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정치적 위상과 권한이 2인자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아울러 김여정의 악역은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와 남성 우위 중심의 권력 구도에서 '강한 여성'상을 부각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차기 지도자로 부각하려는 속내도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