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한옥마을 설날 풍경

2020. 12. 18. 12:00사진 · [ 갤러리 ]

남산 한옥마을 설날 풍경

 

필동 주변은 조선시대 경관이 뛰어나고 아름다워 삼청동·인왕동·백운동과 함께 한양에서 가장 경치가 좋기로 손꼽히던 곳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득히 세월 저편으로 사라진 지금 남산 그 한켠에 옛 한옥 몇 가구가 복원되어 나름대로 생색을 내고 있는 곳이 남산 한옥마을이다.

 

1993년부터 4년에 걸쳐 서울 각처에 있던 한옥 다섯 가구를 옮겨놓은 이곳에서는 가옥에 걸맞은 살림살이도 예스럽게 배치해놓아 전통 한옥의 아름다운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통마을이지만 자연스럽게 조성된 마을이 아니어서 어색한 느낌이다.

 

현재 남산 한옥마을의 다섯 가구는 순정효황후 윤씨의 친가,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재실,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오위장 김춘영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으로 제각기 세워진 시기와 장소, 사용했던 사람의 신분은 달랐지만 가옥마다 부족한 대로 사람의 온기가 살아 있다.

 

종로구 옥인동에 있던 순정효황후 윤씨의 친가 건물은 고종 12(1875)에 지어진 것으로 너무 낡아 옮겨오지 못하고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해놓은 것이다. 비록 원래의 건물은 아니나 해도 육간대청의 규모와 장대석 기단, 방형초석, 아름다운 분합문들, 사고석과 전돌을 사용한 화방벽의 형식과 의장은 최상류층 저택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 역시 최고급 목재인 춘양목을 사용하면서 장대석 기단과 방형초석을 놓는다든지 하여 상류주택의 부유함과 격식을 갖추고 있다. 몸채의 가구는 5량가에 행랑채인 앞채는 3량가를 구사하여 사용자에 따라 격에 차이를 둔 점도 눈에 띈다. 조금 각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전면의 처마도리와 종도리는 굴도리를 쓰면서 나머지는 납도리를 쓰고 있다든지 사랑채는 겹처마를 올리면서 나머지는 홑처마로 마감한 데서도 그 차이를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는 구조가 간결하여 살림집이라기보다는 재실의 용도에 걸맞은 분위기이다.

 

관훈동 민씨 가옥은 민영휘(閔泳徽) 저택의 일부로 원래는 종로구 관훈동에 있었던 것으로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간채,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이전하면서 안채와 사랑채, 별당채만 복원하였다. 부엌과 안방이 일렬로 배치되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개성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형으로 서울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이 집 역시 장대석 기단과 7량가의 가구, 6칸 크기의 부엌 등 대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또 한편 파련각(波蓮刻)한 보아지와 파련대공(破蓮臺工), 마루 밑 고막이벽에 투공 문양 벽돌을 사용하여 만든 환기공(換氣孔), 정교한 난간 구조는 일반 민가에서는 볼 수 없는 대갓집의 화려하고 고급스런 모습이다. 별당채에는 외부가 밖으로 돌출된 간이벽장인 개흘레가 설치돼 있다.

 

속칭 서울 8대가 중 하나로 알려진 집답게 대청 너머로 보이는 노모의 방이 넓고 시원스럽다.

조선 말기의 서민주택인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1890년대에 지어진 집으로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집을 이전, 복원한 것이다. 평면은 자형 안채에 자형 사랑채를 날개처럼 연결시킨 구조로, 이는 자 안채의 터진 부분을 자형 사랑채로 막아 전체적인 모양이 자형이 되도록 한 서울의 전형적인 구조와는 다른 모습이다. 대청은 5량가, 나머지는 3량가이다. 처마가 홑처마로 되어 있는 등 전체적인 분위기는 서민주택 양식이지만 안방의 뒷벽을 사고석과 전돌을 사용하여 화방벽으로 쌓아 집의 격조를 높인다든지 하여 넉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도편수를 맡았던 이승업이 1860년대에 지은 집으로 중구 삼각동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했다. 지금은 정()자형 안채와 자형 사랑채뿐이지만 원래는 대문간채와 행랑채가 이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안채의 경우 대청과 건넌방 쪽은 5량가이며 부엌과 안방 쪽은 반5량으로 꾸며 앞뒤의 지붕 길이를 다르게 한 것이 특이하다. 또한 툇마루 난간과 마루 아래를 장식하고 있는 문양, 부엌 앞 사분합 넌출(길게 늘어진 줄기, 덩굴)의 창살 등 특이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