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6. 09:47ㆍ교육 · [ 역사 ]
허준이 교수, 한국 수학자 최초 필즈상 수상…한국 수학자로는 최초 수상
┃"한국 수학계 쾌거" 허준이 필즈상에 축하 잇따라 / 한국서 어린 시절보내고 석사까지 마친 '국내파' / 리드 추측, 로타 추측 등 수학계 난제 증명으로 주목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 필즈상 수상의 쾌거를 이루면서 수학계에서 축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계 인사나 국내 대학(서울대) 졸업자나 국내 연구기관 재직자가 필즈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한국계 수학자인 허준이(39. 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수학 노벨상' 필즈상의 영예를 안았다.
국제수학연맹(IMU)은 이날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허 교수를 필즈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 수학자로서는 허준이 최초 수상이다. 이전까지 한국계나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4년마다 수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앞으로도 학문적 성취가 기대되는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으로 아벨상과 함께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한번 시상할 때 보통 2∼4명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이날 시상식에선 허 교수 외에 3명이 공동 수상했다. 수상자 중에는 우크라이나의 마리나 비아조우스카도 포함됐다. 비아조우스카는 필즈상 사상 두번째 여성 수상자다.
수상자에게는 금메달과 함께 1만5천 캐나다 달러(약 1천500만원)의 상금도 주고 있다.
나이 제한 때문에 39세(1983년생)인 허 교수에게는 올해가 필즈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국제수학자대회(ICM)에 맞춰 수여된다. ICM은 기초과학분야 최대 학술대회로 전세계 수학자가 참여한다.
허 교수는 수상 뒤 "필즈상 수상자 명단엔 제가 하는 분야인 대수기하학에 큰 공헌을 하신, 영웅 같은 분들의 이름이 줄줄이 있다"며 "그 명단 바로 밑에 내 이름이 한 줄 써진다고 생각하면 저에겐 부담스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필즈상 수상자 선정 이유에서 나열한 결과와 논문들을 보면 "제가 혼자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료들과 같이 진행한 연구들이 많다"면서 "그 동료들을 대표해서 제가 큰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 꾸준히 신나고 재미있게 연구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초등학교부터 대학 학부와 석사 과정까지 한국에서 마쳤다.
2007년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물리천문학부 학사, 2009년 같은 학교 수리과학부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학위는 2014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받았다.
허 교수는 박사 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난 이후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 등 오랜 수학 난제들을 하나씩 증명하면서 수학계에 명성을 떨쳤다.
리드 추측은 채색 다항식을 계산할 때 보이는 계수의 특정한 패턴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1968년 제기된 수학계 난제 가운데 하나였다.
허 교수는 뛰어난 연구 업적과 왕성한 연구 활동으로 앞서 사이먼스 연구자상, 삼성 호암상, 뉴호라이즌상, 블라바트닉 젊은과학자상 등을 받은 바 있다.
이날 허준이 교수의 아버지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는 "나도 크게 보면 수학계 일원이기에 가까운 가족에서 큰 성취가 이루어진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아들인 허 교수가) 수상으로 들뜨지 않고 꾸준히 정진했으면 한다"고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허 교수의 석사과정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허 교수가) 40세가 되기 전에 그토록 많은 난제들을 해결한 걸 보면 누구든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하고도 남을 만큼 성취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고, 꿈만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맹자가 이야기한 군자가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라며 "이 즐거움을 누리게 되어 행복할 따름"이라며 축하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에릭 카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수학과 교수도 목소리를 보탰다. 카츠 교수는 허 교수와 '로타 추측' 해결 연구를 함께했다.
카츠 교수는 "허 교수와 첫 메일을 나누고 논문을 쓴 후에 만났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그때는 우리의 수학적인 여정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알지 못했다"며 "앞으로 허 교수가 매우 바빠질 것 같지만 그래도 수학적 성과를 계속 내줬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허 교수가 학사과정과 석사과정을 마친 서울대에서도 축하의 메시지가 잇따랐다. 허 교수는 2007년 물리천문학부 및 수리과학부 복수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대수기하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승열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2010년도부터 서울대에서 노벨상, 필즈상급 석학을 초빙해서 학생과 교류하게 했다"며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이 제도의 '성공작'"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가 재직중인 고등과학원의 최재경 원장은 "고등과학원 사람들 10여명이 모여 유튜브로 다함께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봤다"며 "고등과학원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허 교수의 연구에 조금이나마 공헌했다고 자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허 교수가 필즈상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해 (미리) 석학교수로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허 교수는 고등과학원에서 2015∼2021년 스칼라(KIAS Scholar)를, 2021년부터 올해 초까지 수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올해 수학부 석학교수로 임용됐다.
수학계에서는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이 한국 수학계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며 탄성이 나왔다.
금종해 대한수학회 회장 겸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는 "허 교수 연구의 많은 부분이 고등과학원에서 이루어졌다"며 "허 교수가 수학자 최고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한 것은 올해 2월 1일 국제수학연맹이 한국 수학의 국가등급을 최고등급인 5그룹으로 상향한 데 이은 한국 수학의 쾌거"라고 밝혔다.
양성덕 고려대학교 이과대학장(수학과 교수)는 "(한국이) 세계 수학계와 인류 문명의 발전에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당당히 보여준 허준이 교수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축하한다"며 "최근 들어 우리 젊은이들이 여러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번 필즈상 수상은 그 활약이 학문적 분야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리과학과 교수이자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조합론을 비롯한 이산수학을 연구하는 엄상일 교수는 "2010년 허준이 교수가 박사과정 1년차에 와서 놀라운 연구발표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후에도 좋은 연구로 늘 놀라운 연구결과를 만나게 해주어서 고맙다"며 "조합수학과 대수기하학 사이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수학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허준이 교수를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수상을 계기로 수학에 흥미와 재능을 가진 많은 사람이 수학자 진로에 관심을 가져주고 정부에서도 수학 연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면, 우리나라 제2, 제3의 필즈상도 곧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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