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진 신성한 땅, 예루살렘

2017. 12. 27. 09:50시사 · [ 논평 ]

피로 얼룩진 신성한 땅, 예루살렘

 

 

 

예루살렘(Jerusalem)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를 뜻하는 곳으로,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성지가 모두 모여 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다가 그 이후에는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았다. 1917년 영국 정부는 예루살렘이 있는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전쟁 자금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후 수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이 시작됐다. 예루살렘은 1981,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오래된 분쟁의 시대, 떠돌게 된 유대인




 

유대인들은 기원전 1500년 무렵부터 중동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해 살았다. 그러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자 독립을 위해 계속해서 반란을 일으켰고, 서기 135년 로마제국에 의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모두 추방당했다. 그 후 유대인들은 나라와 땅을 잃고 유럽과 세계 각지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유대인들은 유럽 각지에 흩어져 정착했지만, 여기서도 멸시와 탄압을 피하지 못했다. '유대인은 예수를 살해한 집단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고,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며 악착같이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돈밖에 모르는 민족'이라고 폄하하는 일도 흔했다. 흑사병 창궐과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죄 없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우리는 신에 의해 선택된 민족이며 언젠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19세기 무렵 이를 현실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시오니즘''밸푸어 선언'

 

당시 유럽에서는 "단일민족은 민족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민족주의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자 유대인들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민족국가를 세워야 한다"'유대주의(Judeaism)'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시오니즘(Zionism·예루살렘 중심부에 성지가 있는 언덕 시온(Zion)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으로도 불린 이 운동을 펼치던 유대인들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민족국가를 세울 기회가 되었다.

 

오스만제국과 전쟁을 벌이던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1917년 영국 국적의 유대인 로드쉴드에게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할 것을 약속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밸푸어 선언' 이후 영국은 유대인과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했고,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했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는 유대인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아온 아랍인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갑자기 이주해온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고 나라를 세운다는 건 이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은 영국의 이중적인 태도에도 크게 분노했다. 밸푸어 선언에 앞서 영국 고등판무관인 맥마흔이 1915"아랍인이 오스만제국에 맞서 전쟁에 참가하면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 국가의 독립을 보장해주겠다"는 거짓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아랍인들은 영국과 유대인을 향한 폭동을 일으켰고,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밸푸어 초상화와 선언문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분쟁의 본격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표면적인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1947년 승전국들의 합의에 따라 홀로코스트(독일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럽 유대인들의 이주로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이스라엘)가 건설되면서 거주민들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 쫓겨났다.

 

1948514일 텔아비브 박물관에 모인 유대인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언하는 모습. 액자 속 인물은 시오니즘 운동을 공식적으로 처음 주장한 오스트리아 국적의 유대인 테오도어 헤르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이 갈등이 깊어지자, 유엔(UN)1947년 예루살렘을 국제법상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으로 선포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도시는 동예루살렘(요르단령)과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됐다. 그러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예루살렘 전체를 수도로 천명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예루살렘 전체가 수도라는 이스라엘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후 옛 땅을 되찾으려는 팔레스타인 민족과 새로 얻은 나라를 지키려는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이 70년간 이어졌다.

 

6일 전쟁과 10월 전쟁.




 

그러나 이전부터 수천 년 이어진 종교적·민족적 갈등부터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국제·정치적 문제들까지 얽히면서, 이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누구도 손대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해왔다. 2000여 년 전부터 이곳은 각자 성지 회복을 꿈꾸는 세 종교 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유럽 기독교 사회와 이슬람교도들은 중세 십자군 전쟁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통치,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 등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대립해온 것이다.

 

70년 만에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손들어준 트럼프

1947년부터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이라고 모든 국가가 준수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0년 만에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손을 들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6일 백악관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은 다른 모든 자주국처럼 자국의 수도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 자주국"이라며 "이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할 때"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의 지위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합의돼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해왔다. 미국도 지금까지 2국가 해법*에 따라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의 수도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1995년 의회가 미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시행하지 않기도 했다.

 

2국가 해법: 1967년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정해진 경계선을 기준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각각 건설해 다툼을 중단하자는 평화 유지 방안.

 

"예루살렘은 3000년 동안 우리의 수도" 정당성 주장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평화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210(현지 시각) 예루살렘 수도 인정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예루살렘은 3000년 동안 이스라엘의 수도였으며 다른 어떤 민족의 수도였던 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겠다고 밝힌 이후 전 세계 이슬람권이 강하게 반발하자 수도 인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것은 성경에 나온다""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현실을 인정해야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국제법상 예루살렘이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유엔의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새 인티파다 운동 전개" 분노 들끓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유혈사태의 위험도 커졌다. 발언 직후, 팔레스타인 각지에서는 시위대가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웠고, 유대인들이 예수의 탄생지라고 믿는 베들레헴의 크리스마스트리 전등도 꺼버렸다. 팔레스타인 교육부는 이날 휴교령을 내리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항의 집회에 참가할 것을 독려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TV 연설에서 "(트럼프의) 이번 조치가 종교전쟁을 부추기고 팔레스타인을 끝나지 않을 전쟁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는 트럼프를 향해 "지옥의 문을 연 결정"이라며 비난하면서 "8일부터 새로운 인티파다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내 이슬람 단체들은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126일부터 사흘을 '분노의 날(days of rage)'로 지정한다""미국과 이스라엘에 분노를 보여주자"고 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미 국무부는 이날 "미국 시민권자는 이스라엘 여행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철저히 중립 지켜온 국제사회 "입장은 변함없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에 철저한 중립을 지켜왔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어떤 나라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쌍방 협의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모습.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독일 대사들은 128(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기 위한 준비를 하겠다는 미국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미국의 결정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맞지 않고 중동 지역 평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영토로 간주한다""예루살렘 수도 결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EU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어 "예루살렘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수도여야 한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되는 이뤄지는) 그때까지 EU 5개국은 예루살렘에 대한 어떤 나라의 통치권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U 5개국 대사들은 '2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도 밝혔다. 이들은 "2국가 해법으로 이어질 평화 협상 재개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됐다""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지역 내 모든 국가가 침착하게 협력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지난 1214(현지 시각) 브뤼셀에서 28개국 정상회의를 마친 이후 트위터를 통해 "EU 정상들은 2개 국가 해법에 대해 확고한 지지를 확인했으며 예루살렘 관련 EU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The State of Israel)




 

이스라엘의 정식 명칭은 이스라엘 국(The State of Israel)으로,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이주해 와 1948년 건국한 나라이다. 이스라엘이란 나라 이름은 '하느님이 지배하신다'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유대인의 조상 야곱이 신에게 받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중해 동남쪽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으며, 레바논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토의 전체 면적은 20,770로 한반도의 약 10분의 1 정도 크기이지만, 남북으로 470km, 동서로 최대 135km에 달하는 좁고 긴 모양 때문에, 사막과 고원 등 다양한 지형을 갖고 있다.

 

수도는 중부의 예루살렘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여, 각국 대사관은 모두 지중해와 인접한 텔아비브에 있다. 행정 구역은 6개 주로 나뉘며, 유대인이 이주해 오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 구역인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중동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크네세트라는 의회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의회는 4년마다 총선을 통해 선출된 12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공식적인 국가 원수는 대통령이지만, 의회 다수파의 지도자인 총리가 실질적인 행정 권한을 행사한다.

 

통곡의 벽(Wailing Wall)

 




예루살렘 서쪽 성벽(Western Wall) 일부를 통곡의 벽이라 부른다. 그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예수가 죽은 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 비극을 지켜본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성벽 앞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이곳은 유대교에서 가장 거룩하게 여기는 기도의 장소로,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사이의 오랜 분쟁 거리로 남아있다. 유대인들에게 이 벽은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의 상징이지만,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는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속한 이슬람 성지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어 1929년에는 '통곡의 벽 사건'이라 불리는 폭력 및 대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종교 분쟁은 19289월 일부 유대교 신자들이 남녀가 따로 모여 앉아 예배를 올려야 한다는 유대교식 집회를 위해 벽에 막과 분리대를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이 성지라 여기는 곳에 일방적으로 공사를 하는 유대인들에게 큰 분노를 느꼈고, 돌을 던지며 이를 제지하려고 했다. 당시의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적 감정이 크게 악화됐다.

 

2차 세계대전 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분할되면서 이 성벽은 요르단에 속하였으나, 19676월의 제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점령해 성벽은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예루살렘은 종교의 성지인 만큼 많은 종교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영화 '벤허'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미국 남북전쟁 영웅이었던 루 월리스 장군이 1880년에 쓴 베스트셀러 소설 '벤허 :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1925년 프레드 니블로 감독이 연출한 무성영화 '벤허'1959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제작비 15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대작으로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손꼽힌다.

 

나탈리 포트먼이 연출하고 주연한 영화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를 다룬 작품으로 2015년 칸 영화제에서 공개되며 화제를 모았다. 이밖에 예루살렘이 배경이 된 영화로 '예루살렘Z : 좀비와의 전쟁', '킹덤 오브 헤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