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계의 별 굴곡졌던 “송대관의 삶” … 500억 “자산가에서 280억” 빚쟁이로

2025. 2. 8. 18:30연예 · [ 뉴스 ]

트로트계의 별 굴곡졌던 송대관의 삶500자산가에서 280빚쟁이로

 

트로트계 4대 천왕 송대관 하늘에 별이 되다. / '해뜰날' 부른 가수 송대관 별세 / 태진아 송대관은 트로트계의 별 가슴 아파” / 500억 자산가에서 280억 빚쟁이로 굴곡졌던 송대관의 삶 / 추모 발길 이어진 송대관 빈소

 

'해뜰날'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지난 7일 오전. 별세했다.

 

고인의 유족 등에 따르면 송대관은 전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얼마 전에도 칸디다증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다가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다고 유족은 전했다. () 송대관의 빈소에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동료 가수와 연예계 동료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향년 78세로 별세한 가운데 고인의 굴곡진 인생사가 재조명받고 있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1967KBS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5만원에 불과한 출연료를 받으며 오랜 기간 무명으로 활동하다 1975년 낸 곡 해 뜰 날이 큰 인기를 얻으며 그해 MBC에서 가수왕으로 선정되는 등 스타에 반열에 올랐다.

송대관, 태진아는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계 4대 천왕으로 불렸다.누가 뭐라고 해도 호남의 영웅적인 가수이자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별 중의 별이었다


'해뜰날' 부른 가수 송대관 별세에 이자연 "많은 이들이 '해뜰날' 들으며 꿈 키워" 태진아 "한쪽 날개 잃은 기분" // 별세한 가수 고() 송대관은 해뜰날’ ‘유행가등 숱한 히트곡으로 지난 58년간 사랑을 받아온 송대관이 7일 별세하자 그의 라이벌이자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였던 가수 태진아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송대관은 서민적 멜로디로 '유행가'·'네박자' 등 줄히트 2대 대한가수협회장 역임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1967KBS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5만원에 불과한 출연료를 받으며 오랜 기간 무명으로 활동하다 1975년 낸 곡 해 뜰 날이 큰 인기를 얻으며 그해 MBC에서 가수왕으로 선정되는 등 스타에 반열에 올랐다.

 

그는 과거 방송에서 굶는 것을 밥 먹듯 하던 긴 무명 시절을 지내다 해 뜰 날을 만나 진짜로 쨍하고 해 뜰 날이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해뜰날’ ‘유행가등 숱한 히트곡으로 지난 58년간 사랑받은 가수 송대관이 7일 별세하자 그의 라이벌이자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였던 가수 태진아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태진아는 이날 누가 뭐라고 해도 송대관 선배 하면 호남의 영웅적인 가수이자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별 중의 별이었다정말 마음이 아프다. 아침 밥상을 차려놨는데 숟가락을 들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고인과 태진아는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계 4대 천왕으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송대관과 태진아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겼다. 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였고, 종종 TV 예능 프로그램과 음악 무대에 함께 출연해 무대를 꾸몄다. ‘라이벌 콘서트라는 합동 공연을 열기도 했다.

 

태진아는 고인에 대해 내게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동반자나 다름이 없었다며 슬퍼했다. 동반자는 태진아의 히트곡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이어 송대관 선배는 (나와의 관계를) ‘실과 바늘이라고 말할 정도로 30년 가까이 방송에서 나와 라이벌을 했다그러다 보니 라이벌 콘서트도 함께 열었고 CF도 함께 여러 편 찍었다고 회상했다.

 

효녀 가수현숙도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고 저리다나와 고향이 가깝기에 더욱 가수 생활을 하며 의지를 많이 한 사이이다. 그래서 오늘 소식에 더욱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고 침통해했다. 송대관은 전북 정읍, 현숙은 전북 김제 출신이다. 현숙은 또 송대관 오빠는 항상 후배들을 잘 이끌어줬다만날 때마다 항상 내 등을 두드려주며 열심히 해라잉하고 따뜻하게 말해주던 게 생각난다고 추억했다.

 

설운도도 현철 선배님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이런 비보를 듣게 돼 마음이 안 좋다선배님은 가셨어도 남겨 놓은 노래는 영원히 모두의 가슴 속에 간직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왕이 되자 송대관의 출연료는 3000만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트로트 가수로서 전성기를 보낸 그의 재산은 500억원까지 불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인의 아내가 2009년 원정 도박과 기획 부동산 사기 등에 연루되면서 160억원이 넘는 빚을 졌다.

 

가족이 거주하던 33억원 상당의 서울 용산구 단독 주택은 경매로 넘어갔고 아내와 고인은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아내는 2년을 복역했고 고인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송대관은 법원에 개인 회생을 신청해 채무 일부를 탕감받았다. 차에서 쪽잠을 자고 삼각 김밥으로 허기를 때우며 공연을 다닌 끝에 2018년 빚 대부분을 갚는 데 성공했다.

 

가수 태진아는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로 향했다.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을 만난 그는 "한쪽 날개를 잃은 기분"이라며 "이제 방송에 나가서 '송대관 보고 있나' 이런 이야기도 편하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슬퍼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전화로 새해 인사를 나누며 오랜만에 '라이벌 디너쇼'를 잡아보자고 이야기한 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별세 소식을 듣고 앞이 안 보이고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함께 빈소를 찾은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은 고인을 따뜻한 덕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로 기억했다.

 

이 회장은 "노래 '네박자'가 나왔을 때 제목을 못 정했다고 하시기에 '쿵짝'보다는 '네박자'가 낫다고 조언을 드렸고, 그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아 행복했다""또 많은 분이 '해뜰날' 노래에 의지하고 기대며 꿈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선배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저희도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다.

 

가수 강진은 "송대관 선배는 이웃집 형님처럼 편하고 친근한 가수였다""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아 달려왔는데 이제 아프지 마시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가수 혜은이와 배우 최다니엘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고 조용필, 임영웅, 현당을 비롯해 작곡가 박현진·가수 박구윤 부자, 방송인 김구라가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고인의 모교인 전주 영생고등학교 동문은 전날부터 이어진 폭설로 상경에 어려움을 겪자 전주에 있는 동문회관에 별도로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홍성택 영생고 총동문회 상임부회장은 "송대관은 상징적인 동문이고 고등학교를 알리는 데 앞장선 인물"이라며 "매년 동문회 행사를 할 때마다 참석했고 지난해에도 오셨기에 동문들이 큰 충격을 받고 슬퍼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여년간 무명 가수로 지내다 1975'해뜰날'이 크게 히트하면서 MBC 가수왕에 오르는 등 최고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당시 가수들의 주요 수입원이던 극장 쇼가 사양길로 접어들자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후 이민 생활 10여년만인 1989년 귀국해 '정때문에' 등을 히트시키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중견 가수의 활동 무대가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도 '네가 뭔데', '차표 한 장', '고향이 남쪽이랬지', '유행가', '네박자' 등을 꾸준히 성공시키며 인기를 과시했다.

 

송대관은 1990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내며 트로트 장르의 확산과 발전에 기여했고,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특히 태진아와는 절친한 친구이자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TV 예능 프로그램과 무대에 콤비로 출연하는가 하면 합동 콘서트도 열었다.

 

한편 고인의 유족 등에 따르면 송대관은 전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송대관은 1967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긴 시간 무명으로 지내다가 1975해뜰날이 히트하며 인기 가수로 도약했다. 이후 네박자’ ‘유행가’ ‘차표 한장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이 과정에서 송대관은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가짜 뉴스가 떠도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런 굽이친 삶은 778세를 일기로 멈췄다. 고인은 이날 건강이 악화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심장 마비로 별세했다.

 

고인은 사망 전 담도암 투병을 했다. 최근 완치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송대관은 1967'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해뜰날', '유행가', '네박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경제가 발전하던 시기 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로 희망을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대부터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태진아, 설운도, () 현철과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송대관은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MBC '10대 최고 가수왕', KBS '가요대상' 성인 부문 최고가수상 등 많은 상을 받았고, 2001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그는 남진에 이어 20082010년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도 맡아 가수들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다. 회장 재직 당시인 2009년 일본 노래방에서 한국 가요가 무단으로 사용된 점을 지적하며 현지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송대관은 1970년대 우리나라가 '잘살아보세'라는 표어로 경제 성장에 매진할 때 이와 잘 어울리는 대표곡 '해뜰날'로 우리 국민에게 힘을 실어줬다""그는 서민적이고 친숙한 음악으로 사랑 받은 자수성가형 가수의 대표 주자였다"고 평가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와 두 아들이 있다. 영결식은 이날 9일 오전 930분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후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