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5. 02:25ㆍ사회 · [ 종합 ]
'홍등가' 어둠 벗고… 인권·문화 꽃피는 열린 공간 탈바꿈
전주시청 맞은편에 위치한 ‘선미촌’/지역예술가들 활동 공간으로 활용/국내 대표적 기지촌 파주 ‘용주골’/2021년까지 창조문화밸리로 조성
아산 ‘장미마을’ 女창업 공간으로/대구 ‘자갈마당’엔 복합시설 들어서/업소 자진폐쇄·기능 전환 유도 성과/무리한 상업시설 개발 되레 역효과
‘파주 용주골’, ‘전주 선미촌’, ‘아산 장미마을’, ‘대구 자갈마당’…. 2000년대 초까지 이른바 대한민국의 대표적 ‘홍등가’로 불리던 성매매업소 집결지다. 이곳이 여성 인권을 담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발효 후 당국의 단속이 강화한 데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들 지역의 변화를 바라는 시선이 점점 강해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비에 나선 결과다.
성매매업소를 강제 철거한 뒤 고층빌딩을 건립하는 ‘재개발’형태의 정비사업이 큰 부작용과 후유증을 초래하자 이들 지역 단체장은 물리력과 공권력 대신 ‘어두운 공간’을 무너뜨릴 승부수로 문화를 입혔다. 문화·예술의 힘으로 성매매 여성의 인권과 마을·도시를 살려내자는 취지다.
◆성매매집결지 탈바꿈의 롤모델… ‘전주 선미촌’
선미촌은 전주시청과 직선거리로 50m, 도로 하나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곳이다. 시청 코앞에서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60년 넘게 성업하던 이곳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연간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과 학교, 대형마트, 금융기관, 업무용 빌딩, 주택가로 둘러싸여 있다.
선미촌은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유곽(遊廓·많은 창녀를 두고 매음 영업을 하는 집)이 광복과 함께 사라지면서 종사자들이 전주역 근처로 흘러들어와 인근의 숙박업소, 술집 등과 연계해 뿌리를 내렸다.
심각한 도시 이미지 훼손을 고민하던 전주시는 혐오스러운 도시공간에 문화예술의 옷을 입혀 인권과 문화가 꽃피는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전략을 세웠다. 선미촌 일원 11만㎡를 2020년까지 정비하는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다.
2016년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도시활력증진사업에 선정된 이 프로젝트는 공권력을 동원하는 기존 성매매집결지 정비와 달리 다양한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해 자연스럽게 업소의 자진 폐쇄와 기능 전환을 유도하는 사업이다. 135억원을 들여 2022년까지 선미촌 2만2276㎡에 공방·전시장·커뮤니티 공간·문화예술복합공간 조성과 주민공동체 육성, 골목 경관 꾸미기, 도로 정비 등을 진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는 지난해 선미촌 내 건물 5동을 매입해 거점공간을 확보,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활동 공간과 업사이클센터, 주민 휴식공간으로 활용했다. 선미촌에서 가장 큰 성매매업소 4층 건물을 사들여 지난해 7월 관련 부서인 ‘서노송예술촌 현장시청’을 열었다. 현장시청에는 도시재생과 서노송예술촌팀 등 소속 공무원들이 상주하며, 일대를 문화예술촌으로 바꾸는 일을 한다.
전주 선미촌 재정비사업은 성매매업소 집결지 정비사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경기 수원시와 시의회, 충남 아산시, 인천 남구청, 대구시, 서울 성북구 등 전국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파주 용주골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지촌이라는 불명예를 간직한 파주시 파주읍 용주골도 2021년까지 창조문화밸리로 탈바꿈한다. 6·25전쟁 때 미군기지가 들어서며 생겨난 용주골은 한때 2만여㎡에 성매매업소가 200여곳, 종사자가 500∼600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시는 소외지역으로 전락한 이곳을 지역 명소로 개발하고자 2014년 주민과 함께 재개발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거듭한 끝에 창조문화밸리로 탈바꿈시키기로 마음을 모았다. 국비 등 104억원으로 올해는 주민공동체 사무실과 주민 소통공간인 커뮤니티 센터를 조성하고, 내년에는 용주골 삼거리부터 연풍초교 앞까지 1㎞ 구간의 건물 외관을 1960∼1970년대 모습으로 꾸며 창작문화거리로 조성한다. 이어 2021년까지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세트장도 세우고,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어 관광객의 편의를 높일 예정이다.
◆아산 장미마을은 여성 인권 마을로, 대구 자갈마당은 ‘아트스페이스’로
온천휴양 관광지로 명성을 떨치던 충남 아산시도 온천 관광객 등을 상대로 1970~1980년대 번성했던 속칭 ‘장미마을’을 여성 인권의 상징마을로 조성하기로 했다. 여성 인권유린과 차별의 현장이었던 장미마을을 여성 인권을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마을로 꾸미는 아이디어는 여성가족부의 여성 친화적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로 선정되도록 했다. 아산시는 여가부와 이의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체결을 했다.
아산시는 여가부의 지원에 힘입어 해당 지역을 여성일자리 창출과 여성·청년의 거주공간이자 창업활동 공간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도시재생사업 이후 지속가능한 마을이 되도록 여성 인재 양성과 여성 주도 거버넌스를 육성한다.
‘자갈마당’으로 유명한 대구 성매매업소 집결지를 관할하는 대구 중구청은 지난해 10월 성매매 중심지에 ‘닷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다. 이 공간이 생길 즈음 200m 거리에 1200가구의 주상복합아파트 입주가 시작됐고 인근에 초등학교까지 있어 주민들의 ‘자갈마당’의 폐쇄요구가 강했다.
구청장은 물리적 폐쇄 대신 문화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는 확신에 따라 문화공간 건립을 진행했다. 이 공간은 개관과 함께 참여 작가 8명의 작품으로 ‘기억정원, 자갈마당전(展)’을 열었고 최근까지 3000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문화공간으로 정착했다.
반면 ‘청량리 588’처럼 철거 후 상업시설로 전환하려는 수원과 서울 성북구 등의 재정비사업은 업주와 성매매 여성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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