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4. 05:09ㆍ연예 · [ 뉴스 ]
'출국' 이범수 "처절한 아빠 역, 배우로서 남 주기 아까웠다"
배우 이범수는 쉽지 않은 길을 기꺼이 택하는 사람이다. 그는 배우로서의 이끌림에 자신을 맡겼고 그렇게 만난 영화 '출국'에서 갈등, 번민, 슬픔 등의 온갖 감정을 발산하며 연기에 몰두했다.
'출국'(감독 노규엽·제작 디씨드)은 1986년 분단의 도시 독일 베를린에서 서로 다른 목표를 좇는 이들 속 가족을 되찾기 위한 한 남자의 사투를 그린 영화로,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절에 시대와 이념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평범한 남자 오영민의 얘기를 담았다.
이범수는 극 중 베를린에서 유학 중이던 경제학자 오영민을 연기했다. 오영민은 자신과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북한으로 가는 선택을 한 뒤 실수임을 깨닫고 코펜하겐 공항에서 위험한 탈출을 시도하다 가족과 헤어지게 된다. 이후 각국 정보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들 역시 오영민의 생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서로 다른 목적으로 그를 이용하려고 감시한다.
이범수는 이번 영화에 관해 "요즘 극장가가 자극적인 영화 시류인데 흥미 위주의 볼거리가 많은 극장가에 모처럼 나온 진정성 있는 순수한 수필집같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어 "촬영, 조명, 감독, 제작사 모두 신인이다. 불안한 점이 있겠지만 신인이기 때문에 때묻지 않고 도전적이고 과감하고 순수하고 참신하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화는 흥행이라는 코드가 중요하다. 수백만 관객이 드는 작품에 대한 욕심도 있다. 그런데 뻔한 걸 또 하기보다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했다"고 '출국'을 선택한 계기를 전하며 배우로서의 마음 가짐을 보여줬다.
'출국'은 당초 '사선에서'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개봉하려 했으나 박근혜 정권 당시 제작비를 정부로부터 대거 지원 받아 제작됐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개봉이 취소됐고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범수는 이같은 논란에 관해 '오해'라고 말문을 열고 "그런 부당한 혜택, 부당한 이득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작자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이번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전 경제학자인 오길남 씨의 2011년 저서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이다. 오 씨는 1985년 독일 유학 중 가족과 함께 월북했고 혼자 탈출해 귀순했다. 오 씨와 그 가족의 월북에 작곡가 고(故) 윤이상의 권유가 있었는지를 두고 관련자들의 논쟁이 있기도 했다. 이범수는 원작의 존재를 나중에 알게 됐다고 했다. 여기저기 잡음이 일었던 '출국'이지만, 이범수는 이를 모두 뛰어넘을만큼 작품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가득했다. 그는 "어찌됐든 배우로서 남주기 아까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배우가 연기력만으로 감성적인 세심한 변화를 표현하고 갈등, 번민, 슬픔 등 감정 연기만으로 극을 이끌 수 있는 작품을 오랜만에 만나서 욕심,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견해를 밝혔다.
'출국'의 배급사는 소위 말하는 대형 배급사가 아닐 뿐더러, 그런 면이 흥행에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여기에도 이범수는 "그 부분은 배우의 영역이 아니라 늘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당연히 유통 시장이 대형 배급사면 물리적으로라도 확보를 하고 밀어부쳐서라도 관객 수를 모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의 불리함이 있다. 현실이다. 받아들여야 되는 거고 영화가 좋으면 점점 좋은 소문이 퍼져나가는 경우도 있지 않나. 결론은 (관객들이) 극장으로 오시게끔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같은 날 개봉하는 '신비한 동물사전2'가 재미없어야 된다"고 농담했다.
전작에서 다수의 악역이나 주로 강렬한 연기를 해왔던 그는 이번 작품에선 누구보다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보였다. 커다란 사건에 휘말려 갖은 고생을 하며 뜨거운 부성애 연기로 열연을 펼친 그다. 이범수는 "고정된 뻔한 이미지가 아닌 무형 무색의 배우여야 한다고 19살 때부터 배웠다. 그게 그렇게 머리를 안 떠나는 것 같다"며 "사람이 어떻게 맨날 양복만 입겠나. 일요일에 트레이닝복도 입고 잘 때는 잠옷도 입고 놀러갈 때는 캐주얼도 입는 것 아니겠나. '출국'의 오영민으로는 절절한 아빠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범수는 "악역도 재미있다. 합법적으로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이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에서 독일어를 구사하는 이범수는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가 독일어였단다. 그는 "고등학교 때 독일어 선생님이 경상도 분이었는데 한국말도 잘 못알아들을 정도로 했다. 뵙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영화에서 독일어를 엄청 많이 했다. 근데 10분의 8은 편집된 것 같다. 외국인인 샘과 촬영한 세 장면 정도가 날아간 것 같다. 대사가 다 긴 것이었다. 국민교육헌장 외우듯이 외웠고, 샘이 독일어 잘한다고 칭찬까지 했는데. 외국어가 힘들더라. 열심히 했는데 편집돼서 아쉽다"고 밝혔다.
그는 폴란드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촬영에서 겪은 고충도 털어놨다. 자동차 운전이 제일 부담스러웠단 그는 "차량이 유럽식이고 1980년대 차량이었다. 수동식이고 기어가 핸들에 장착돼 있으니 손에 안 익었다. 한국에서 스틱 운전을 연습했어도 자기 차가 아니면 불편하지 않나. 능수능란하게 운전을 해야 하는데 능수능란이란 게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러려다 사고가 나는 거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익살스럽게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준 그였지만, 가족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하는 캐릭터인만큼 고생도 심했을 터. 이범수는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으로 활주로에서 무릎 꿇고 비는 장면을 꼽았다. 그는 "3~4일 찍었나. 해가 짧았다. 극 중에서 계획이 실패하고 혼자 남겨진 가련한 아빠, 비맞은 강아지같이 처절함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그래서 어떤 장면보다도 제일 신경을 집중했다. 그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 다른 배우들도 다같이 집중해줘서 찍었다"고 얘기했다.
이범수와 함께 호흡을 맞춘 연우진은 극 중에서 영민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받고 투입됐으나 영민과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기부 요원 무혁을 연기했다. 이범수는 연우진에 관해 "좋은 친구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미래가 기대된다"고 칭찬하며 촬영 현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했다. "걔(연우진)랑 나랑 첫 만남이 다리 위에서 (연우진이) 멱살을 잡고 흔드는 장면이었다. 리허설하고 촬영을 하다가 가슴이 아파와서 보니까 가슴에 멍이 들었더라. 그걸 우진이가 봤는지 그 장면 촬영이 끝나고 폴란드 현지에서 연고를 구해왔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멍 든 데 바르는 거라며 죄송하다고 해서 감동했다. 입장이 바뀌어서 제가 과거 때리고 멱살을 잡는 역할을 할 때도 상대에게 연고를 줄 생각을 못 했는데 얘(연우진)는 폴란드까지 와서 이러는구나 싶어 무척 고마웠고 온정이 있는 친구라 생각했다. 그 연고를 아껴 바르고 있다. 효과가 좋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편 이범수, 연우진, 박혁권, 박주미, 이종혁 등이 출연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얘기를 그린 영화 '출국'은 오는 14일 개봉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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