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9. 05:43ㆍ우주 · [ 과학 ]
【포커스】 과학자들 28일 이례적 집단행동…"인수위, 우주청 경남 결정 결사반대"
┃과학·산업계 우주 전문가들 박사 80명 뛰쳐나왔다 / "우주청, 과학 아닌 정치 논리로 추진" 우려 / 인수위 "우주 전문가 의견 안들어" / 항공우주청 경남 유치에 대전 반발 / 과학계 15개 단체, 우주산업 전문가 80명 기자회견 / 항공·우주 분리, 기존 인프라 고려 못한 결정 비판 / "과학의 정치화 우려, 우주청 신설 재고해야"
과학·산업계 우주 전문가인 과학자들이 단체행동에 나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역균형 발전 일환으로 항공우주청을 경상남도로 보내겠다고 결정한 데 따른 항명성 움직임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청 논의가 과학이 아닌 정치 논리로 결정됐다며 반발에 나선 것이다.
28일 과학계에 따르면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자와 관련 산업계 관계자 80여 명은 이날 대전컨벤션센터(DCC) 앞에서 '인수위 우주청 경남 설립 결사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장소는 김병준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이 대국민 보고회를 여는 자리였다.
앞서 지난 27일 김병준 위원장은 17개 시도 공약을 발표하며 우주청을 경남으로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우주청을 경남으로 보낸 배경을 윤 당선인 의지 때문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시절 우주청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항공우주 기업 80여개가 있는 경남 사천에 설치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우주청은 부처별 산재한 우주 정책 기능을 하나로 모으는 '우주 전담기구'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모델이다. 하지만 기자회견에 나선 과학자들은 국가적 어젠다가 돼야 할 우주청 논의가 지역균형 발전 논리로 축소돼 무력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인수위가 깊은 논의 없이 우주청을 경남에 설립하겠다는 발표는 국가·산업·전략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비과학적인 정치적 결정"이라면서 "국가 미래를 생각했을 때 매우 우려되는 결론"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주청은 국가의 우주 정책과 전략, 산업 육성에 매진해야 하고 다른 부처와 산학연 협업이 가능한 조직 형태가 돼야 한다"며 "대전지역 모든 우주항공국방 관련 산학연은 우주청의 경남 설립을 결사반대한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또 "향후 전략, 역할, 공간 설정을 재논의함으로써 우주강국, 미래 우주산업 육성이라는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우주청이 대전·세종 지역에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경남은 항공우주 기반 제조업 기업이 많은 '생산기지'이지만, 대전·세종을 연구소와 정책기관이 밀집한 '두뇌'라며 한국형 NASA 설립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전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천문연구원 등 25개 출연연과 우주 기업 100여 개가 밀집돼 우주 분야 시너지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출연연 박사는 "과학강국은 우주를 경제·안보·산업 관점으로 바라보지만 한국은 우주를 정치 당략에 따라 흔들고 있다"면서 "미국과 유럽 등 우주강국은 독립적인 조직을 운영하며 전략적으로 우주를 활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우주가 선심성 공약으로 전락해 연구자로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항공우주청을 경남 사천에 신설하기로 확정한 가운데 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우주 전문가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윤석열 당선인은 지역 공약으로 경남 사천에 항공우주청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경남 사천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비롯한 항공우주 기업들이 있고,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우주부품시험센터, 경남테크노파크 항공우주센터 등이 자리해 민간기업 중심 상업화 등이 쉽다고 봤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대전도 정부출연연구기관, 우주기업 등이 대덕특구에 밀집해 있고, 세종 정부청사 등과 연계하기 쉽다는 점을 내세우며 유치 경쟁을 그동안 해왔다.
이날 기자 회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인수위가 우주청이 아닌 항공우주청 방식을 도입해 경남에 설립한다고 발표한 것은 국가적, 산업적, 전략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정치적 결정이자 국가 미래를 고려했을 때 우려되는 결론이라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항공 분야가 실용화와 항공기 정비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과 달리 우주 분야는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진행돼 통합에 무리가 있다는 점 ▲우주 업무가 다양한 부처에 흩어져 효과적인 대응을 못해 독립적인 우주조직이 필요하다는 점 ▲정부부처, 전략기관, 대학, 산업체 등과 협력 가능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미 인프라를 갖춘 대전을 간과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특히 부단위 정부조직은 세종으로, 청단위 정부조직은 대전으로 이동한다는 정부 조직 원칙이 깨진다면 모든 지역이 부처를 이동해달라는 요구를 하게 돼 과학의 정치화, 행정의 정치화가 확산할 것으로 봤다.
신명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노동조합 위원장은 “대통령 당선인이 정치가 과학에 개입하는 일이 없게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번 유치 지역 선정과정에서 연구현장의 의견이 반영되거나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며 “(외청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우주 분야를 뺏기지 않으려고 해 기존 정부부처의 비효율적인 행정이 계속되고, 구축된 인프라도 활용하지 못해 국익 차원에서 비효율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정치와 과학의 분리를 언급한 대통령 당선인이 스스로의 약속을 깨는 일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정흥채 따뜻한 과학마을 벽돌한장 회장(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것과 같은 사례가 되풀이되고 있다”며 “우주정책은 ‘국가적인 대계’로 깊게 생각하며 기존에 축적된 다양한 연구 분야들과의 연계를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간과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은 “우주 전담기관의 대전행, 사천행을 선택하기 전에 국방우주, 공공우주, 상업우주를 어떻게 재편하고 활용할 것인지 (정부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통합적인 국가 전략의 하나로 숙고를 거쳐 우주청을 설립해야 하며, 대전은 우주청의 역할을 국가적으로 가장 잘 수행할 최적지라는 게 과학기술계의 과학적인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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