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할머니 "나 죽으면 성현이 누가 돌보나 걱정이에요"

2018. 9. 11. 09:33나눔 · [ 봉사 ]

베트남 할머니 "나 죽으면 성현이 누가 돌보나 걱정이에요"

 

 

베트남 귀환여성의 눈물

 

한국인 아빠·베트남 엄마 한-베자녀 / 베트남에서 '불법 체류' 경계에 / 한국 국적 자녀 체류연장 난관 / 한국 아빠 둔 지원·여진 자매 / 베트남서 태어난 여진은 무국적 / "양국 정부 전향적 비자정책 펴야"

 

베트남서도 외로운 아이들 / 엄마 돈벌러 타지로 떠나고 / 아이 절반 이상이 외조부모 손에 / 한국 친가는 대부분 연락두절 / 할머니 야채장사로 근근이 생활

 

지난달 29일 베트남 껀터 지역에서 만난 -베자녀지원·여진 자매는 외조부모와 함께 산다. 한국 국적의 지원이와 무국적자인 여진이를 염려하는 것은 외할머니 당티탄투이의 몫이다.




 

할머니, 여진이는 왜 나처럼 한국 사람이 아니야?”

 

지원(가명·7)이의 질문에 할머니 당티탄투이(50)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눈치가 빨라 아버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 지원이지만, 이것만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지난달 29일 만난 지원·여진 자매는 베트남 껀터 중심지에서 차로 1시간20분 거리에 있는 톳놋구에서 배를 탄 뒤 10여분 들어가면 나오는 떤록섬에 살고 있다. 지원이 자매는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베 자녀. 아빠는 교통사고로 숨졌고 엄마는 돈 벌러 말레이시아에 가 외조부모가 두 자매를 돌보고 있다. 한국 국적의 지원이와 무국적자인 여진(가명·6)이를 염려하는 것도 외조부모의 몫으로 남겨졌다.

 

여권·비자 연장 못해 불법 체류경계 넘나들어 한국에서 태어난 한-베 자녀는 엄마를 따라 베트남에 오면서 외국인 신분으로 거주하게 된다. 외국인이 합법적인 체류 조건을 충족하려면 한국 여권으로 비자 신청을 해야 한다. 올해 초 코쿤껀터가 껀터와 허우장성 지역에 거주하는 한-베 자녀 113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보면, 일정 기간마다 체류 조건을 유지해야 하는 한국 국적의 한-베 자녀가 81.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태어난 지원이는 한국 국적이지만, 여권이 만료된 지 오래다.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5년에 한번씩 여권 유효기간을 연장해야 하는데 엄마가 생계로 인해 고향으로 쉽게 돌아올 수 없어 아직 필요한 서류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원이는 친권자인 엄마가 고향에 오면 바로 여권 연장 절차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아빠가 친권자인 아이들은 아빠가 여권 연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되면 여권 연장을 할 수 없다. 여권 연장에 성공하더라도 3~6개월에 한번씩 체류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어려움이 또 기다리고 있다.

 

여진이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딸이니 지우라는 시어머니의 압박을 피해 베트남에서 태어난 여진이는 생후 2개월 때 아버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출생신고를 반려당해 국적이 없다. 고작 다섯살을 넘긴 자매는 미등록 체류자 신세가 됐다. “여진이가 베트남 국적을 얻는다 해도 걱정이에요. 자매인데 국적이 다르면 안 되잖아요. 애들한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투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동안 외국 국적자인 한-베 자녀들은 불안정한 체류 신분 탓에 교육받을 권리, 치료받을 권리에서 소외돼왔다. 다행히 지난해 말 껀터시 인민위원회 긴급지침으로 외국 국적 자녀들도 베트남 아동들과 동등하게 현지 공교육 혜택과 의료 혜택을 받게 됐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에는 한-베 자녀들의 수는 물론 체류 및 취학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응오티반프엉 코쿤 상담가는 공교육 혜택이 공식화된 만큼 아이들이 베트남에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비자정책 등에 대한 전향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쿤의 실태조사를 보면, 귀환 여성이 아이 양육비 전액을 부담하거나 외조부모와 공동부담하는 비율이 76.9%를 차지했다. 한국에 있는 친부가 양육비를 부담하는 비율은 7.7%에 그쳤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의 연락 빈도를 물었을 때 연락이 두절된 경우(66.3%)가 가장 많았다. 성현이 할머니의 소원은 하나뿐이다. “바라는 것은 제 건강이에요. 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죽으면 성현이 옆에 있을 사람이 없어요. 제가 건강해야 성현이를 돌볼 수 있어요.”

 

지난달 28일 베트남 껀터에서 만난 한베자녀 성현군은 외할머니(왼쪽), 외할아버지와 산다. 엄마는 가정폭력을 피해 성현군을 데리고 베트남에 돌아왔다. 성현군을 외조부모에 맡기고 타지로 돈을 벌러나간 엄마는 1년에 한두번씩 고향에 얼굴을 비친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베 자녀를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정책은 전무한 상태다. 지난 5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과 여성가족부, 외교부 등 4개 정부부처가 베트남 껀터를 다녀갔지만 이렇다 할 후속 대책은 아직 나온 게 없다. 다문화가족 지원정책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에 의한 지원 대상에 해외에 있는 다문화가족은 포함돼 있지 않다현재 지원 필요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